국제 커피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생산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도 케랄라주 와야나드(Wayanad) 지역에서는 2025/26 수확기 초입부터 심각한 현장 노동력 부족으로 익은 커피 체리를 제때 수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생산자들은 수확 지연과 품질 저하로 인한 상당한 손실 위험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가격 호황기에 오히려 수익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농장 곳곳에 방치된 익은 체리
와야나드의 커피 농장 현장은 심각합니다. 2025년 12월 2일 기준, 와야나드 생산자들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 때문에 익은 커피 체리를 수확하지 못하고 있어, 커피 가격이 강세임에도 불구하고 큰 수익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지역 매체 보도에 따르면 농가들은 수확기에 맞춰 현지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농장 곳곳에서 완전히 익은 체리가 방치되거나 나무에 마른 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Perfect Daily Grind / Onmanorama
야생동물까지 가세한 악순환
노동력 부족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수확이 지연된 체리가 야생동물(시벳, 원숭이, 사슴, 공작, 야생 코끼리 등)에 의한 피해와 도난에 노출되면서, 단순 인건비 상승을 넘어 수확 자체가 불가능한 구간이 생기고 있습니다. 제때 따지 못한 체리는 나무에서 갈라지며 생두가 분리되고, 장기 방치 시 과육이 썩거나 건조하면서 결점두 비율이 높아져 상품성과 컵 품질 모두 크게 떨어집니다. Onmanorama
날씨마저 적이 되었다
기후 조건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속되는 비와 구름 낀 날씨 때문에 체리의 숙성이 고르게 진행되지 않고, 설령 수확하더라도 10~12일 이상 필요한 자연 건조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노동력 부족과 맞물려 수확과 건조 모두 지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확 지연, 미수확으로 인한 물량 손실, 품질 저하, 이후 작기 생산성 악화 등 복합적 손실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업계의 우려 사항으로 지적됩니다. Onmanorama / Perfect Daily Grind
공공 일자리 프로그램이 농장을 비웠다
MGNREGA, 17년간 반복된 갈등
와야나드 농가들이 노동력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MGNREGA(마하트마 간디 국가 농촌 고용 보장법) 프로그램입니다. 이 문제는 2025년뿐 아니라 최소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된 구조적 갈등입니다. 와야나드의 로부스타 커피 수확기는 전통적으로 12월부터 2월까지 진행되는데, MGNREGA는 연중 노동 수요가 높아 이 기간과 중첩되며 농촌 노동자들이 안정적 공공 일자리를 선호하게 만듭니다. Onmanorama
2008년 와야나드 농가들은 이미 NREGS(현 MGNREGA)가 1~2월 커피·후추 수확기 노동력을 빼앗아 임금 상승과 인력 부족을 초래한다고 강하게 비판했으며, 정부는 이에 따라 1월~2월 15일까지 작업 중단을 허용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도 동일한 불만이 제기되는 것은, MGNREGA의 연중 운영(100일 보장)이 수확기 집중 수요와 맞물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India Today
노동자는 왜 농장을 떠나는가
MGNREGA는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동일 일당(약 125루피)을 보장하며, 특히 여성 노동자 임금을 기존 60~70루피에서 100루피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반면 커피 수확은 계절적이고 불규칙하며, 최근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계약자의 중간 착취나 작업 불확실성 때문에 공공 프로그램을 우선 선택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India Today
농가들은 “수익이 더 좋다면 노동자들이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MGNREGA가 노동 시장을 왜곡해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합니다. 반대로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프로그램 축소가 어렵다는 정부 입장도 공존하며, 이 갈등은 기후 변화로 수확기 변동성이 증가하면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Onmanorama / India Today
고가격 시대, 수익성은 정말 개선됐나
과거는 더 암울했다
현재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면 과거와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4년 이전 와야나드 로부스타 농장 출고가는 kg당 300~330루피 수준으로 낮았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 20~30% 감소와 노동·비료 비용 상승이 겹쳐 순수익 마진이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경제 연구에 따르면 케랄라 커피 재배 가구의 순이익률은 가격 하락기(2010~2020년대 초)에 10~20%대에 불과했으며, 많은 소농이 재배 면적 축소나 타 작물 전환을 선택할 정도로 수익성이 취약했습니다. Times of India / Semantic Scholar
지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완전하다
2025년 로부스타는 kg당 460루피(지난해 대비 30% 상승), 체리는 퀸탈당 28,000루피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농가들은 “수년간 저가격 고통 끝에 호황이 왔으나 생산량 감소가 발목을 잡는다”고 호소합니다. 가격 상승분이 과거 적자 폭을 메우는 수준으로 순수익성은 명확히 개선된 상태이지만, 노동 부족과 야생동물 피해 등으로 수확량이 줄어 실제 현금화 소득 증가는 제한적입니다. Mathrubhumi / Times of India
결국 과거 저가격기에는 가격 자체가 낮아서 수익성이 좋지 않았고, 지금은 가격은 높지만 수확 불능(노동 부족·기후·야생동물·도난)과 생산비 상승이 겹쳐 잠재 수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모두 구조적 제약 요인이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 고가격은 일부 농가에게만 제한적으로 개선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Onmanorama / Mathrubhumi
해법은 있는가
단기 처방의 한계
단기적으로는 임금 인상이나 외부·이주 노동자 유입 등으로 수확 인력을 메우려는 시도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는 생산비 상승과 소규모 농가의 수익성 악화를 가속할 수 있어, 장기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뚜렷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과거처럼 MGNREGA 부분 중단 외에 농장 내 공공 작업 허용(예: 제초) 등 보완책이 시도됐으나 한계가 뚜렷합니다. Perfect Daily Grind / India Today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동자 임금 경쟁력 강화나 기계화 도입이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이 있지만, 소규모 산지 특성상 실효성 논란이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기계화가 어려운 경사지·소규모 플롯 구조, 기후 변화로 인한 수확기 변동, 공공 정책과 농업노동 시장의 엇박자 등이 반복되지 않는 한, 와야나드 사례와 같은 ‘가격 강세 속 생산자 미수혜’ 상황은 앞으로도 인도 내 다른 커피 산지에서 재발할 수 있습니다. TU Delft / India Today
가격 호황의 불편한 진실
과거 저가격 시 수익성 저하가 농가 이탈과 노동 유출을 가속화했다면, 현재는 고가격이 임금 상승(노동비가 생산비의 65% 차지)과 구조적 문제를 증폭시켜 장기적으로 가격 하락 시 붕괴 리스크가 더 커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와야나드의 사례는 국제 커피 가격 상승이 곧바로 생산자의 실질 소득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Kerala State Planning Board / Extension Journal
노동력 확보, 기후 적응, 공공 정책 조율, 야생동물 피해 대책 등 복합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커피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생산 현장의 위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와야나드의 역설은 단순히 인도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커피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취약성을 상징하는 경고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