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존, 에티오피아 커피의 숨겨진 보석이 깨어나다
에티오피아 남동부 고원지대 베일(Bale) 존이 커피 생산지로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베일 존 농업국은 2025년 중앙 시장에 15,000톤을 공급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과거 야생 숲 커피로만 알려졌던 이 지역은 최근 600,000제곱미터 규모의 현대식 건조 시설을 구축하며 스페셜티 커피 생산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시다모나 예가체프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베일의 독특한 풍미가 이제 독자적인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베일 존은 어디인가
베일 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티오피아의 행정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행정 구역은 연방 정부 아래 주(Regional State), 존(Zone), 워레다(Woreda), 케벨레(Kebele)의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존(Zone)은 주 바로 아래의 2단계 행정 단위로, 한국으로 치면 도(Province) 아래의 큰 행정 구역에 해당합니다.
베일 존은 오로미아(Oromia) 주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남동부 고원 지대에 위치합니다. 풍부한 산림 자원으로 유명한 베일 산 국립공원이 있는 이곳은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일 존 농업국은 중앙 정부 직속 기관이 아니라 오로미아 주 정부 산하의 지방 행정 조직입니다. 연방 및 주 정부의 농업 정책을 해당 존 내의 워레다들에게 전달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Wikipedia / Wikipedia
야생 숲 커피에서 상업 생산지로의 전환
베일 존이 최근 생산량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과거 생산을 못 해서가 아니라 집계되지 않거나 상업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베일: 이름 없는 숲 커피
에티오피아 커피는 역사적으로 시다모(Sidamo), 예가체프, 하라(Harrar) 등 유명 브랜드 위주로 수출되었습니다. 베일 존은 행정구역상 오로미아주에 속하지만 커피 지도상으로는 시다모 인근에 위치해 있습니다. 베일의 고유한 야생 숲 커피 특성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인근의 유명 산지 이름에 묻어가거나 단순한 상업용 등급으로 섞여 에티오피아 상품 거래소를 통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베일 존은 전통적으로 시다마나 예가체프처럼 정밀한 플랜테이션 중심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하레나 숲(Harenna Forest) 등에서 자라는 야생 또는 반야생 숲 커피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생산 잠재력은 높았으나 체계적인 수확 관리가 부족했고, 접근성이 낮아 외부로 반출되는 공식 물량이 적었습니다. 과거 베일 지역은 숲이 울창하고 도로 인프라가 부족해 농부들이 수확한 체리를 제때 가공소로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이로 인해 품질이 낮은 건식 상태로 로컬 시장에서 소비되거나,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는 비공식 경로로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Verdensskove
독자적 브랜드로의 부상
최근 Farm Africa 등 국제 비정부기구와 민간 투자자들이 베일 야생 커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별도의 스페셜티 브랜드로 분리하여 직수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도로망 확충과 함께 와이어 베드 같은 건조 시설이 대거 도입되면서 숲에서 채집한 커피의 품질 관리가 가능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이전에는 지역 내 소비나 비공식 경로로 유통되던 물량이 중앙 시장 공급망으로 편입되면서 통계상 생산량이 급증한 것입니다. 숲 커피 특유의 유기농과 그늘 재배 특성이 스페셜티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상업적 생산 유인이 커졌습니다. 이번 15,000톤 공급 계획은 이러한 잠재력을 공식적인 수출 물량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Farm Africa / Farm Africa
가공 인프라의 혁신: 숲을 지키며 품질을 높이다
베일 존 농업국은 품질과 물량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민간 투자자와 협력하여 수확 후 관리 시설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현재 68,000헥타르에서 407,400 퀸탈을 수확했으며, 이는 목표치의 93%에 달합니다.
600,000제곱미터 규모의 와이어 베드
품질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민간 투자자와 기관들이 협력하여 600,000제곱미터 이상의 커피 건조용 와이어 베드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체리 건조 과정에서의 오염을 막고 스페셜티 등급 생산 비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베일 존은 여전히 숲 커피나 반야생 커피 시스템이 주를 이룹니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국립공원 및 보호 구역이 많아 대규모 개간이 제한적인 이 지역에서, 이번 시설 확충은 새로운 나무를 빽빽하게 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숲속에 자생하거나 드문드문 심어진 커피 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고급스럽게 가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600,000제곱미터의 와이어 베드는 수확한 열매를 흙바닥이 아닌 청결한 환경에서 말리는 건조장으로, 숲에서 따온 커피가 오염되는 것을 막아 스페셜티 등급을 받기 위한 수확 후 처리 시설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양적 팽창보다는 품질에 의한 가치 상승과 버려지던 물량의 상품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숲을 보존하면서 고부가가치 커피를 생산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Verdensskove / Farm Africa
숲이 만드는 독특한 풍미
베일 커피의 맛은 인간의 개입 최소화에서 나옵니다. 빽빽한 야생 숲 나무 그늘 아래서 천천히 익어가며 밀도가 높고 당분이 응축된 체리가 생성됩니다. 물이 부족한 산악 지형 특성상 전통적으로 체리 껍질째 말리는 내추럴 방식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는 베일 커피 특유의 묵직한 바디감과 발효된 과일 향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인입니다. 이번에 설치된 와이어 베드는 흙냄새 같은 결점을 줄이고, 이러한 내추럴 가공의 장점인 과일 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참고로, 베일 존 특히 하레나 숲에서 생산되는 야생 커피는 최근 스페셜티 시장에서 독자적인 풍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블루베리, 넥타린, 라즈베리 같은 베리류의 진한 단맛과 시트러스 계열의 부드러운 산미, 그리고 야생 숲 토양의 영향으로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과 캐러멜, 바닐라의 여운이 특징입니다. 이탈리아 슬로푸드 협회는 하레나 숲 커피를 프레시디움 품목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최근 민간 수출업체들이 베일 지역 커피를 별도로 커핑한 결과 SCAA 기준 80점 이상의 스페셜티 등급으로 분류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Caffe Corsini / Caffe San Domenico
물류 병목과 시장 흡수 능력의 과제
베일 존의 15,000톤 중앙 시장 공급 계획은 긍정적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급증한 물량을 처리할 내륙 운송 인프라와 중앙 경매 시스템 또는 직수출 항만 물류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특히 홍해 리스크 등 지정학적 불안 요소가 수출 물류에 병목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일 존의 변화는 이름 없던 숲 커피의 독립 선언이자 원시적 채집에서 체계적 관리로의 진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숲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고부가가치 커피를 생산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베일 커피가 시다모나 예가체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자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물류 인프라 구축과 품질 일관성 유지에 달려 있습니다. E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