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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찌꺼기 원료

커피 찌꺼기, 바이오디젤 넘어 바이오플라스틱 원료로 진화하다

커피를 내리고 남은 찌꺼기, 즉 폐커피박(spent coffee grounds)은 오랫동안 그냥 버려지는 쓰레기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스페인과 한국 연구팀이 각각 이 찌꺼기에서 바이오디젤 원료가 되는 오일과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재료가 되는 물질을 뽑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커피 찌꺼기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어요. 두 연구 모두 실험실 수준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지려면 비용과 환경성이라는 현실적인 벽을 넘어야 한다는 신중한 목소리도 나옵니다. 폐커피박이 정말 ‘버릴 것 없는 자원’이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봅니다.

매년 버려지는 폐커피박, 사실은 숨겨진 자원이었다

전 세계에서 한 해 생산되는 커피 원두는 약 1,000만 톤에 달하지만, 이 중 실제로 음료로 마셔지는 비율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커피를 추출하고 난 뒤 남는 찌꺼기, 즉 폐커피박(spent coffee grounds, SCG)으로 버려지는데요. 이 폐커피박에는 기름 성분(지질)이 약 15%나 들어 있어 바이오디젤 원료로 쓸 수 있고,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그노셀룰로오스, 즉 식물의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오스·헤미셀룰로오스·리그닌 같은 섬유질 성분은 바이오에탄올이나 젖산, 그리고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천연 생분해성 플라스틱인 폴리하이드록시알칸오에이트(PHA) 같은 다양한 바이오소재의 원료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폐커피박은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대표적인 유기 폐기물이자, 동시에 가장 기대되는 미래 자원 중 하나로 꼽히는 셈이지요.Phys.org

오일부터 뽑아낸다, 스페인 연구팀의 새로운 추출법

헥산 배치 공정, 어떻게 최적의 조건을 찾았나

스페인 로비라 이 비르힐리 대학교(Universitat Rovira i Virgili, URV) 화학공학과의 Jorge F. Romero, Alberto Tampieri, Daniel Montané, Magdalena Constantí, Francesc Medina 연구팀은 폐커피박에서 오일을 효율적으로 뽑아내면서도 나머지 바이오매스는 손상시키지 않는 배치(batch) 방식의 헥산 추출 공정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Biomass and Bioenergy에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배치 방식이란 한 번에 일정량의 재료를 통째로 담아 처리하는 방식을 뜻하고, 헥산은 오일을 잘 녹여내는 유기 용매입니다. 연구팀은 온도와 처리 시간, 용매와 커피박의 비율이라는 세 가지 핵심 변수를 하나씩 바꿔가며 실험한 끝에, 섭씨 45도에서 60분간, 건조 잔여물 1그램당 헥산 35밀리리터를 사용하는 조건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확인했어요.URV/Phys.org

이어 연구팀은 이 조건에서 얻은 성과를 오래전부터 업계 표준으로 쓰인 속슬레(Soxhlet) 추출법과 비교했습니다. 속슬레 추출법은 용매를 반복적으로 가열·순환시켜 최대한 많은 오일을 뽑아내는 전통적인 실험 기법인데요. 비교 결과 새로 개발한 헥산 배치 공정은 속슬레 추출법 대비 약 90%에 달하는 오일 수율을 회수하면서도, 불순물 함량은 속슬레의 3.9%보다 훨씬 낮은 0.3%에 그쳤습니다. 추출된 오일의 지방산 성분은 리놀레산과 팔미트산이 주를 이루어 바이오디젤 원료로도 충분히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연구팀은 초음파나 마이크로파를 활용한 더 빠른 추출법도 함께 비교했지만, 오일 품질과 에너지 효율, 그리고 공장 규모로 키울 수 있는 확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다소 완만한 조건의 헥산 배치 공정이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Phys.org

오일 제거가 곧 다음 단계의 준비 과정이다

이 연구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오일을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전처리’ 역할도 겸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질(기름) 성분을 먼저 제거하면 남아 있는 리그노셀룰로오스 섬유질이 이후 용매나 촉매에 훨씬 잘 반응하게 되는데요. 이는 오일을 뽑고 남은 찌꺼기가 바이오에탄올, 젖산, 폴리하이드록시알칸오에이트(PHA), 항공유의 원료, 페놀 화합물 등 더 다양한 후속 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는 2026년 7월 29일 커피 산업 전문 매체 Perfect Daily Grind의 주간 뉴스 요약에서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Phys.org/Perfect Daily Grind

커피 찌꺼기가 플라스틱으로 태어나는 순간

두 번째로 살펴볼 연구는 Perfect Daily Grind의 2026년 8월 14일자 주간 뉴스 요약에서 소개된 논문으로, 한국 동국대학교(Ganesh Saratale, Han Seung Shin)와 한양대학교(Rijuta Ganesh Saratale, Ramesh Kumar), 이화여자대학교(Dong Su Kim)를 중심으로 인도 바바사헤브 빔라오 암베드카르 대학교와 대만 국립가오슝과학기술대학교 연구자가 함께 참여해 국제학술지 Polymers(MDPI)에 2026년 8월 8일 발표한 것입니다. 이 연구는 폐커피박에서 오일과 항산화 성분인 페놀 화합물을 먼저 용매로 뽑아낸 뒤 남은 바이오매스(SCGO)를 활용해, 자연에서 당분을 먹고 몸속에 생분해성 플라스틱 성분을 저장하는 특성을 가진 박테리아, 즉 Cupriavidus necator를 배양하는 방식을 다뤘습니다.Perfect Daily Grind/Polymers

알칼리 전처리가 가장 좋은 답이었다

연구팀은 남은 바이오매스를 산(황산), 알칼리(수산화나트륨), 과아세트산이라는 세 가지 화학적 전처리 방식으로 각각 처리한 뒤 그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여기서 전처리란 딱딱하게 얽혀 있는 섬유질 구조를 화학물질로 부드럽게 풀어헤쳐, 그 속에 갇혀 있던 당분을 효소가 더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을 뜻합니다. 비교 결과 알칼리 전처리가 리그닌 제거율과 효소를 이용한 당 분해 효율, 그리고 발효에 쓸 수 있는 당의 회수율 모두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얻은 알칼리 전처리 가수분해물에, 옥수수 전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저가 부산물인 콘스팁리커(corn steep liquor)를 영양분으로 보충해 박테리아의 먹이로 공급했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Polymers

옥수수 부산물을 더하니 생산량이 늘었다

실제로 이 조건에서 박테리아는 균체 농도 6.5±0.26 g/L까지 자라났고, 박테리아 몸속에 생분해성 플라스틱 성분이 쌓이는 비율인 PHA 축적률은 60.0±1.45%에 달했으며, 최종적으로 얻은 PHA 생산량은 3.89±0.14 g/L였습니다. 특히 이렇게 만들어진 고분자 물질의 구조와 열적 특성을 분석해보니, 이미 시장에서 상용화되어 쓰이고 있는 폴리(3-하이드록시부티레이트), 즉 PHB라는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매우 유사한 물성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이 연구는 폐커피박이 오일뿐 아니라, 그 오일을 뽑고 남은 섬유질 찌꺼기까지도 미생물 발효를 통해 플라스틱 원료로 완전히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스페인 연구팀의 오일 추출 공정과 함께 커피 찌꺼기를 남김없이 활용하는 ‘완전 활용(zero-waste valorization)’ 전략의 두 축을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Polymers

장밋빛 전망 뒤에 남은 질문들

비용의 함정, 여전히 비싼 바이오플라스틱

하지만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러한 실험실 성과와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상용화 사이에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옵니다. 무엇보다 PHA 계열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생산 비용이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보다 3배에서 12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비용의 약 50%가 박테리아를 키우는 먹이, 즉 발효 기질(탄소원)을 조달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폐커피박처럼 값싼 기질을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한 이유도 바로 이 비용 구조 때문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현재까지의 PHA 생산 기술이 아직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RSC Sustainability

전과정을 따져보니 오히려 손해였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연구팀(Schmidt Rivera, Gallego-Schmid, Najdanovic-Visak, Azapagic)이 국제학술지 Resources, Conservation and Recycling에 발표한 전과정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연구가 대표적인데요. 전과정평가란 어떤 제품이나 공정이 원료를 얻는 순간부터 최종적으로 폐기되기까지 전체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평가 방법입니다. 연구팀은 폐커피박 1톤을 기준으로 바이오디젤 생산, 소각, 매립, 혐기성 소화(산소 없이 미생물로 분해하는 방식), 퇴비화, 그리고 토양에 직접 뿌리는 방법 등 여섯 가지 처리 경로의 환경영향을 비교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어요. 바이오디젤 생산이 16개 환경영향 범주 가운데 11개에서 가장 큰 부담을 유발하는, 환경적으로 가장 불리한 선택지였던 반면, 오히려 소각이 14개 범주에서 순-환경이익을 내는 가장 지속가능한 선택지로 나타난 것입니다. 연구팀은 폐기물 처리의 우선순위를 정해놓은 폐기물 계층구조나 자원 순환 가이드라인만을 그대로 따를 경우, 실제로는 환경적으로 더 나쁜 선택을 하게 될 위험이 있다며 전과정평가에 기반한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버려지는 자원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꾼다’는 서사가 항상 환경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반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University of Manchester

균일성과 물류라는 현실적 장벽

여기에 더해 폐커피박의 오일 함량 자체가 원두 종류나 로스팅, 추출 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점, 그리고 용매를 회수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도 바이오디젤 생산의 경제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거듭 언급됩니다. 결국 이번 스페인 연구팀의 오일 추출 공정과 한국 연구팀의 PHA 바이오플라스틱 연구는 실험실 단위에서의 공정 최적화라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실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원료를 모으고 운송하는 물류의 표준화, 대규모 생산 시의 경제성, 그리고 정확한 전과정 환경영향 평가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흐름이 보여주는 결론입니다.

로스팅과 품종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라비카가 오일에서는 한 수 위다

그렇다면 원두의 품종이나 로스팅 정도는 폐커피박의 활용 가치에 영향을 줄까요?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연방대학교 연구팀(Adriana S. Franca, Leandro S. Oliveira)이 국제학술지 Foods(MDPI)에 발표한 리뷰에 따르면, 볶지 않은 생커피 기준 지질(오일) 함량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를 통틀어 100그램당 9~15그램 수준이지만, 로스팅을 거친 뒤에는 아라비카가 100그램당 15~20그램, 로부스타가 100그램당 11~16그램으로 품종 간 차이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폐커피박 단계에서는 이 차이가 100그램당 22~27그램까지 농축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는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물에 잘 녹는 성분들은 씻겨 나가는 반면, 기름 성분은 그대로 찌꺼기에 남아 상대적인 비중이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Foods

다시 말해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플라스틱처럼 오일 추출을 목적으로 폐커피박을 재활용한다면, 원리적으로는 아라비카 기반 폐커피박이 로부스타보다 지질 수율이 더 높아 유리하다는 것이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됩니다. 미국 리치먼드 대학교 화학과의 연구에서도 폐커피박의 오일 수율이 커피 품종(아라비카 또는 로부스타)에 따라 10~15% 사이에서 달라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University of Richmond

로부스타는 몸에 좋은 성분에서 앞선다

반면 로스팅 강도, 즉 라이트·미디엄·다크 로스트 여부가 지질 함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보다는, 폴리페놀이나 플라보노이드, 클로로겐산(CGA)처럼 몸에 좋은 항산화 성분에 더 뚜렷한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최근 눈에 띕니다. 태국 킹몽쿳 공과대학교 등 연구팀이 2026년 2월 국제학술지 Food Chemistry: X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원두를 각각 라이트·미디엄·다크로 로스팅한 뒤, 커피를 세 번 연속 추출(브루잉)하고 남은 폐커피박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로스팅 강도는 볶기 전 생두의 성분 프로필에는 영향을 주지만, 그 영향은 브루잉을 반복할수록 점차 옅어졌고, 최종적으로 폐커피박의 화학적 특성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변수는 로스팅 레벨이 아니라 ‘브루잉(추출) 횟수’였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로부스타 폐커피박은 로스팅 레벨과 무관하게 아라비카보다 항산화력이 꾸준히 더 높게 유지됐고, 클로로겐산은 로스팅 강도가 강할수록, 즉 다크 로스트일수록 더 많이 손실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Food Chemistry: X

정리하면 재활용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유리한 조건도 달라지는 셈입니다.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플라스틱처럼 오일 기반 전환이 목적이라면 아라비카 기반 폐커피박이, 항산화 성분 같은 기능성 식품 소재 회수가 목적이라면 오히려 로부스타 기반 폐커피박과 라이트 로스트 조건이 유리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입니다. 다만 앞서 소개한 스페인 연구팀의 바이오디젤 연구나 한국 연구팀의 Cupriavidus necator PHA 연구 자체에서는 특정 품종이나 로스팅 레벨을 변수로 직접 비교하지는 않았고, 폐커피박 전반을 대상으로 공정을 최적화하는 데 집중했다는 점도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완전한 활용을 위해 남은 과제

스페인과 한국 두 연구팀의 성과는 그동안 그냥 버려지던 폐커피박이 오일과 플라스틱 원료라는 두 갈래 자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용 구조와 전과정 환경영향이라는 두 가지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 성과는 실험실 안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맨체스터 대학교의 전과정평가 연구가 보여주듯, ‘버려지는 자원을 되살린다’는 서사만으로는 실제 환경적 이득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은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자와 기업들이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입니다. 결국 폐커피박이 진짜 ‘버릴 것 없는 자원’이 되려면, 원료를 안정적으로 모으고 운송하는 물류 체계와 대규모 생산 시의 경제성, 그리고 정밀한 환경영향 평가라는 세 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커피 찌꺼기가 하늘을 난다? 한국의 친환경 항공유 도전

커피 찌꺼기가 토양을 살린다, 폐기물에서 자원으로

버려지는 커피 체리가 프리미엄 음료 원료로 변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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