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커피 시장, 가격 정책이 초래한 역마진의 늪
에티오피아 커피 시장에서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생두 가격이 수출 판매가보다 비싸지면서 수출업자들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상품거래소(ECX)와 커피당국(ECTA)은 환율 자유화에 맞춰 새로운 가격 메커니즘을 도입했지만, 현장에서는 정책가격과 현실가격의 괴리가 커지면서 대규모 계약 파기와 업체 퇴출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2026년 시장 재편을 앞두고 에티오피아 커피 산업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국내 가격이 수출 마진을 집어삼키다
에티오피아 현지 매체들은 국내 생두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으면서 수출 마진이 사라졌다는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기본이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국내 매입가가 해외 판매가보다 비싼 기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외화 확보 수단이 된 커피
가장 큰 원인은 커피 전문 수출업자가 아닌 자동차나 건축자재 수입업자들이 커피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에티오피아는 만성적인 외화 부족 국가로, 수입업자들은 해외에서 물건을 사올 달러를 은행에서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들은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커피를 비싼 가격에라도 사들여 해외로 수출합니다. 커피 수출 자체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확보한 달러로 자동차를 수입해 국내에 팔면 훨씬 큰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국내 생두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올려놓으면서 커피 수출만으로 먹고사는 순수 커피 수출업자들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가격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마진이 사라지거나 도산 위기에 처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AICS
투기적 사재기가 가격을 끌어올려
에티오피아 화폐(비르)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농부와 중간상인들은 현금 대신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자산인 커피를 창고에 쌓아두고 팔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물량이 시장에 나오지 않으니 국내 가격은 계속 올랐습니다. 정부가 사재기 단속과 수출 최저가 설정 정책을 펼쳤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부가 정한 가격보다 훨씬 비싼 돈을 줘야만 커피를 구할 수 있는 이중 가격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Capital Ethiopia
환율 자유화와 새로운 가격 메커니즘의 충돌
2024년 7월 에티오피아 정부는 50년 넘게 유지해 온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는 역사적인 경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제부터 1달러가 몇 비르인지는 은행 창구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이 정하게 되었습니다.
IMF의 압박과 환율 폭락
에티오피아는 만성적인 외화 부족에 시달려 왔습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1달러를 57비르로 정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110~120비르에 거래되었습니다. 아무도 은행에 달러를 팔지 않고 암시장으로 숨어버렸고, 국가는 빚을 갚거나 필수품을 수입할 달러가 바닥났습니다. 외환보유고가 2주 치 미만으로 떨어지자 IMF는 34억 달러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환율을 시장 현실에 맞게 풀라고 요구했습니다.
2024년 7월 28일 에티오피아 중앙은행은 변동환율제 도입, 수입 규제 철폐, 외화 보유 허용 등의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억눌려 있던 진짜 가격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루아침에 비르화 가치가 30% 떨어졌고, 몇 주 만에 80% 이상 폭락했습니다. 1달러당 57비르였던 환율은 100비르를 넘어 2024년 말에는 120비르까지 치솟았습니다. KOTRA
뉴욕 시세와 환율을 연동한 새 가격 정책
ECX와 ECTA는 환율 자유화에 맞춰 새로운 가격 메커니즘을 도입했습니다. 과거 고정된 환율과 내부 거래 데이터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 가격과 변동된 실시간 환율을 연동시키는 구조로 개편했습니다.
새 메커니즘의 핵심은 뉴욕 아라비카 선물 가격을 기준점으로 삼고, 2024년 7월 환율 자유화 조치 이후 급등한 환율을 반영하여 수출 시 받게 될 예상 수입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변수를 매주 갱신하여 이 가격 밑으로는 거래하지 말라는 하한선을 정했습니다. 수출업자가 해외 바이어에게 너무 싸게 팔아치우는 언더인보이싱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The Reporter
정책가격과 현실가격의 치명적 괴리
문제는 정부가 계산한 이론상 적정가와 실제 농가와 중간상인이 요구하는 시장 실세가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역마진 구조의 고착화
정부와 ECX는 국제 시세와 환율을 곱해 국제 시세가 이 정도니 국내에서도 이 가격 수준에 사면 적정 마진이 남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달러가 급한 수입업자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생두를 싹쓸이하니 농부는 그 가격이 아니면 팔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설정한 수출 최저가는 파운드당 4달러 수준이었지만, 실제 매입가는 파운드당 6~7달러 수준의 비용 지출을 강요받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에티오피아 현지 매체 The Reporter는 ECX 플로어에서는 1 페레술라(17kg)가 약 6,000비르 수준으로 보이지만 실제 국내 현물 시장에서는 10,000~11,000비르에 매입하는 경우가 있어 정책가격과 현실가격의 괴리가 크다고 전했습니다. 당국과 세무당국이 실제 매입가를 인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손실을 보고 수출하게 되는 구조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The Reporter
비용 인정 불가와 세무 리스크
수출업자가 농부에게 실제로 지불한 돈은 100원인데, ECX 시스템상으로는 국제 시세 역산해보니 70원이 적정가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면 차액인 30원은 공식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비용 처리가 안 되니 서류상으로는 이익을 본 것처럼 되어 세금을 더 내야 하거나 실제 손실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다. 새 메커니즘은 뉴욕 차트만 바라보고 있지만, 에티오피아 내부의 인플레이션과 투기적 사재기로 인한 프리미엄은 수식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표가 나온다는 주장입니다. The Reporter
갈등이 폭발하다: 계약 파기와 업체 퇴출
가격 정책의 부작용은 대규모 계약 파기와 업체 퇴출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1억 3천만 달러 규모의 계약 파기 사태
2024년 말에서 2025년 초 사이 에티오피아 내 커피 매입 가격이 너무 올라 수출업자들이 물건을 구해서 보내는 것보다 위약금을 무는 게 낫다고 판단하거나 아예 잠적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이탈리아 원조기관 AICS 보고서는 수백 건의 수출 계약이 종료되었고, 약 1억 3천만 달러(약 2만 8천 톤) 어치의 커피가 선적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ECTA는 이를 해결하겠다며 계약 불이행 수출업자 명단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면허를 박탈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5~6개의 대형 수출업체가 이 조치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당했습니다. AICS / The Reporter
중국계 업체 전면 금지 사건
2024년 2월 ECTA는 중국계 커피 회사들이 에티오피아 수출업자에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며 이들과의 신규 계약 체결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미수금 문제를 넘어 외화 획득용 커피 거래의 부작용이었습니다. 수입업자들이 커피를 통해 달러를 빼돌리거나 비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대금 결제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Capital Ethiopia
농민 시위와 극단적 선택
농부들은 수출업자나 공급업자에게 커피를 외상으로 넘겼는데, 이들이 은행 대출이 막혔다거나 돈이 없다며 수십억 비르의 대금을 갚지 않자 시위를 벌였습니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까지 발생했습니다. 농업부와 ECTA는 극히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며 사태를 축소하려 했지만, 현장에서는 돈 많은 소수 수출업자가 시장 가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The Reporter
EUDR 규제 비용 전가 논란
2025년부터 적용되는 유럽의 강력한 산림 벌채 규제도 갈등의 불씨입니다. 유럽에 커피를 팔려면 내 커피 밭 좌표를 다 찍어서 증명해야 합니다. ECTA는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영세한 수출업자와 농부들은 비용과 인력 지원 없이 규제만 강요한다며 반발했습니다. 준비가 안 된 수출업자들은 유럽 시장을 포기하고 아시아나 중동으로 판로를 돌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Agro Berichten Buitenland / The Farmers Journal
2026년 이후, 양극화된 시장으로 재편될 것인가
현지 상황을 분석한 리포트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현재의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보다는 2026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영세업체의 도산과 시장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입니다.
구조조정과 생산량 증대의 효과
정부와 일부 분석가들은 현재의 혼란을 시장 정상화를 위한 산통으로 해석합니다. 높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가짜 수출업자들이 블랙리스트 등재와 금융 압박으로 시장에서 쫓겨나면서, 장기적으로는 진성 커피 수출업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2025/26년 에티오피아 커피 생산량이 사상 최고치인 1,160만 백(9% 증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공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국내 가격 거품이 꺼지고 수급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USDA / Africa Sustainability Matters
승자독식 시장의 도래
하지만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갈등이 양극화 형태로 봉합될 것이라 우려합니다. 자금력이 풍부하고 해외 직영 유통망을 갖춘 소수의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만이 살아남고, 전통적인 중소 수출업체들은 대거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유럽의 까다로운 산림 규제를 맞출 수 있는 곳도 결국 대형업체뿐이므로, 유럽행 고급 커피와 아시아·중동행 저가 커피 시장이 완전히 분리될 거란 예측입니다.
글로벌 아라비카 가격이 2026년에는 약 15% 하락하며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에티오피아 내부의 가격 거품도 외부 요인에 의해 강제로 진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주간 최저가 조정 시스템이 초기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되면, 환율 변동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Coffee Farmers Kenya / IMARC Group
지금의 아수라장은 2026년쯤이면 정리가 되겠지만, 그 결과는 건전하지만 덩치가 큰 소수만이 살아남은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