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글로벌 육종 네트워크 Innovea가 2025년 11월, 로부스타 프로그램을 공식 편입하며 11개국 체제로 확대되었습니다. 베트남과 가나가 새롭게 합류했고, 이들 11개국은 전 세계 커피 공급량의 약 40%를 차지합니다. 2022년 아라비카 중심으로 출발한 이 네트워크가 왜 이제야 로부스타를 받아들였을까요? 그리고 이 변화는 커피 농가와 산업 전반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아라비카만으로 시작한 이유
Innovea Global Coffee Breeding Network는 2022년 ‘글로벌 아라비카 육종 네트워크’로 런칭되었습니다. 당시 World Coffee Research(WCR)는 아라비카를 우선순위로 삼았고, 이는 시장 비중과 기후 취약성이라는 두 가지 긴급한 리스크 때문이었습니다. 아라비카는 전 세계 소비되는 커피 중 다수를 차지하며, 스페셜티와 프리미엄 시장의 핵심 품종입니다. 가격과 품질 리스크가 산업 전반에 바로 전이되기 때문에, 기후 회복력을 높이면서 품질을 유지·개선할 수 있는 아라비카 품종 개발이 Innovea의 1차 목표로 제시되었습니다. World Coffee Research / Sucafina
무엇보다 아라비카는 기온 상승, 강우 패턴 변화, 병해충에 매우 민감합니다. 여러 연구에서 2050년까지 적합 재배지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반복되어, 국제 협력을 통한 대규모 육종이 시급한 작물로 인식되었습니다. 현재 상업 아라비카 품종들은 소수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선발되며, 자가수분 특성까지 겹쳐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런 동질성은 병해충과 기후 스트레스에 대한 집단 취약성을 키워, 단일 국가나 기관 단위의 육종만으로는 충분한 돌파구를 만들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Innovea는 여러 국가가 아라비카 유전자원, 데이터, 육종 기법을 공유해 ‘전 지구적 아라비카 개량 모판’을 만들려는 시도로 설계되었고, 출범 당시 공식 명칭도 ‘Global Arabica Breeding Network’로 소개되었습니다. World Coffee Research / Juncture Digital
공식 설명에서는 초기에 아라비카에 초점을 두고 이후 로부스타로 확장하는 ‘단계적 접근’이 자원과 역량 측면에서 현실적이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에서는 다른 해석도 제기됩니다.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고부가가치와 브랜드 이미지를 좌우하는 쪽이 아라비카라서, 대형 로스터와 소비재 기업의 이해가 반영된 우선순위 설정이라는 것입니다. 로부스타 재배농의 기후 리스크가 더 빠르게 커지는 지역도 많은데, 이들이 상대적으로 뒤늦게 네트워크에 편입된 점은 ‘시장가치 중심’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입니다. World Coffee Research / Frontiers in Sustainable Food Systems
로부스타, Innovea에 공식 합류하다
로부스타 쪽은 2023년 산업계 요구를 계기로 별도의 로부스타 연구·육종 프로그램으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에 교배가 진행되며 2025년 초에는 첫 씨앗 수확과 묘목 증식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이 로부스타 네트워크는 애초에 Innovea 아라비카 모델을 ‘벤치마크로 삼은 별도 글로벌 네트워크’로 설계됐지만, 2025년 11월 발표에서 Innovea Global Breeding Network가 아라비카에 더해 로부스타 육종까지 포괄한다고 명시되면서, 명칭과 운영상 Innovea 체계 안으로 공식 편입된 형태가 되었습니다. World Coffee Research / World Coffee Research
11개국, 전 세계 공급량의 40%
이번 발표로 베트남과 가나가 Innovea에 새로 합류했고, 기존 회원국인 인도, 인도네시아, 르완다, 우간다가 로부스타 육종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해 총 6개국이 로부스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들 6개국은 전 세계 로부스타 수출의 64%를 차지하는 주요 생산·수출국입니다. 전체 Innovea 네트워크는 이제 11개국의 국립 연구기관이 참여하며, 이들이 합산해 전 세계 커피 공급량의 약 40%를 생산합니다. 개발될 품종의 보급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World Coffee Research
2027년부터 시작되는 현장 시험
로부스타 편입을 위해 WCR은 프랑스 농업 연구기관 CIRAD가 제공한 로부스타 유전자원 콜렉션을 활용해 새로운 조합의 교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수량, 가뭄 내성 등 로부스타 고유 특성을 극대화하는 품종 후보군을 만들고 있습니다. 2027년부터 각 파트너 국가는 WCR로부터 약 1,000주의 새로운 로부스타 개체(클론)를 분양받아 자국 시험포에서 성능 시험을 진행합니다. 수량, 병충해 저항성, 품질(컵 퀄리티)을 기준으로 유망 계통을 선발해 자체 육종 프로그램에 통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World Coffee Research
WCR과 참여 기업들은 로부스타가 기본적으로 높은 수량성과 가뭄 내성을 지녀, 적절한 육종을 통해 기후 리스크가 큰 생산지에서 농가 소득 안정과 공급 안정성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네트워크에 자금을 지원하는 글로벌 로스팅·소비재 기업들은, 이 프로그램이 소농의 수익성 개선과 원산지 다양성 유지, 새로운 맛 프로파일 발굴을 동시에 추구하는 장기적인 공급망 리스크 관리 수단이라고 봅니다. World Coffee Research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전환점
이번 조치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를 하나의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 아래 두겠다는 의미입니다. 자원(예산, 유전자원, 데이터) 배분과 우선순위에서 로부스타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한편, 특정 생산국과 대형 기업 이해가 두 종 모두의 육종 방향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버넌스 리스크도 함께 키울 수 있습니다. Frontiers in Sustainable Food Systems
또한 아라비카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에 로부스타가 뒤늦게 편입되면서, 로부스타 생산국과 소규모 농가의 요구(예: 가격 안정, 저투입·저위험 품종)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기후 회복력·고수량 중심의 표준화된 품종 패키지’가 확산될 수 있다는 비판도 학계와 지속가능성 논의에서 제기됩니다. 긍정적 평가와 별개로, 로부스타 고수량·집약 생산을 전제로 한 육종이 토지 이용, 농약·비료 사용 증가, 단일품종 의존 등의 환경·사회적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Innovea가 대규모 글로벌 기업의 출연금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장기적으로 특정 대형 구매자의 요구(균질성, 특정 맛 프로파일, 지속가능성 지표 방식 등)에 맞춰 품종 개발 방향이 편향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소규모 생산자의 자율성과 지역 고유 품종이 약화될 수 있다는 거버넌스 측 우려도 존재합니다.
Innovea의 로부스타 편입은 커피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점입니다. 전 세계 커피 공급량의 40%를 생산하는 11개국이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를 동시에 개량한다는 것은, 기후 위기 시대에 커피 농가와 산업 모두에게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할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대형 기업 중심의 자금 구조가 소농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지, 고수량·표준화 중심의 육종이 지역 다양성과 생태계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지에 대한 투명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로부스타가 Innovea의 주인공이 된 지금,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