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커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명확했습니다. 밝고 깨끗한 워시드 아라비카, 균형 잡힌 산미, 안정적인 품질. 그러나 최근 5년 사이 콜롬비아는 이 정체성을 스스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코-퍼먼트(co-fermented)와 각종 실험적 가공을 전면에 내세운 “발효 실험실”로 포지셔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FNC(콜롬비아커피생산자연합)의 오랜 워시드 중심 규범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경쟁과 생산자 생계 유지를 위한 전략적 전환입니다. 전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하는 과정입니다.
워시드 제국이 흔들린 이유
FNC가 만든 100% 워시드 규범
수십 년간 콜롬비아 커피는 “클린컵의 워시드 마일드”로 표준화되어 왔고, FNC의 수매·품질 기준도 거의 전적으로 워시드 가공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WIPO가 정리한 ‘Café de Colombia’ 지리적 표시 사례에서도 FNC는 콜롬비아 커피의 핵심 요건으로 “100% 워시드 아라비카”를 강조하며 국가 브랜드 전략 전체를 여기에 맞췄습니다. WIPO
내추럴과 허니는 오랫동안 이 틀 밖의 공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FNC의 수매 메커니즘이 워시드 생산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어, 수년 동안 내추럴 커피는 커핑에서 발효 결함으로 분류되어 더 낮은 가격의 수출 스트림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워시드 중심 규범과 품질 검사 프레임이 사실상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Coffee Intelligence / Raw Material
프리미엄 감소와 생계 압박
문제는 이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19년 이후에도 콜롬비아는 최대 워시드 아라비카 공급국 지위를 유지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워시드 콜롬비아의 프리미엄은 예전만 못해졌고, 생산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가격이 농가 빈곤의 직접 원인으로 지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격과 수익성 압박이 생산자들에게 “차별화된 발효 가공을 통한 부가가치 극대화”를 모색하게 만든 핵심 배경입니다. Coffee Intelligence
코-퍼먼트, 향미를 설계하다
발효에 재료를 더하는 새로운 접근
코-퍼먼트 커피는 발효 과정에 과일, 허브, 향신료 등 추가 재료를 넣어, 로스팅 이후에도 감지되는 새로운 향미를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발효가 커피 체리 자체의 당과 미생물에 의존했다면, 코-퍼먼트는 외부 재료와 선택적 효모·설탕 등을 활용해 발효를 더 적극적으로 조정합니다. Magazine Coffee
경제성이 핵심 동기
코-퍼먼트의 가장 큰 동기는 경제성입니다. 수확량이 적거나 품질이 중간 수준인 생두라도, 잘 설계된 코-퍼먼트 프로토콜을 적용하면 경쟁용·한정판 커피로 포지셔닝해 훨씬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소비자 측에서는 새로운 향미 경험에 대한 수요가 강해, 트로피칼 과일, 향신료 계열의 강렬한 향을 가진 컵이 빠르게 팔리며 이 수요가 공급을 끌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Magazine Coffee
실험실이 된 콜롬비아 농장들
Global Coffee Awards를 휩쓴 실험 가공
Coffee Intelligence는 최근 5년간 콜롬비아에서 코-퍼먼트·인퓨즈드·실험적 가공 로트가 급증했고, 2025 Global Coffee Awards의 실험 가공 부문을 콜롬비아 로트가 사실상 장악했다고 전했습니다. 예로 카페 프리미티보(Café Primitivo)는 아나에로빅 레드 허니와 카보닉 마서레이션을 결합한 복합 발효 로트를 선보여, 과거 전통적 퍼라면 “과도한 결함”으로 볼 수준의 향미 강도를 경쟁력으로 전환했습니다. Coffee Intelligence
에드윈 노레냐의 과감한 실험
대표적인 사례는 Finca Campo Hermoso(퀸디오)의 에드윈 노레냐입니다. 그는 홉, 칠리, 각종 과일, 이전 배치의 모스토(mossto)를 활용한 복합 발효를 상업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Black Ginger Ale Gesha’는 블랙 허니 베이스에 이중 카보닉 마서레이션, 모스토, 갤럭시 홉을 더해 생강·라임·홉·마가리타를 연상시키는 향미를 구현합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커피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지만, 실제로는 스페셜티 시장에서 높은 가격과 강한 차별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Royal Coffee
노레냐는 모스토(이전 발효 배치의 주스와 미생물)를 반복 사용하면서, 특정 품종·부재료에 최적화된 미생물 군집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향미와 재현성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이 접근은 전통적인 워시드·내추럴에서는 보기 어려운 수준의 “발효 설계”에 해당하며, 홉·고추와 같은 비전통 재료까지 활용하면서도 컵에서 여전히 “커피다운 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Royal Coffee
네 가지 가속 요인
콜롬비아에서 실험 가공이 빠르게 확산된 데는 네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유럽·아시아를 중심으로 강한 아로마와 과일 향, 센서리 새로움에 대한 시장 선호가 커지면서, 중간 점수대 워시드 로트를 발효 설계로 “경쟁용 커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유인이 생겼습니다. Coffee Intelligence
동시에 약 56만 소규모 농가와 잘 발달된 기술 보급 시스템 덕분에 새로운 발효·효모·탱크 사용법이 빠르게 인근 농가로 확산되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생산자들이 미생물학·발효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농장을 실험실과 같이 운영하며 기존 규범을 깨는 데 적극적입니다. 한편 중국과 중동 등 새로 성장하는 시장에서 실험적 프로파일에 대한 수요가 커지며, 콜롬비아가 지리·물류적으로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입니다. Coffee Intelligence
제도도 따라 움직인다
FNC의 규범 개편
FNC는 오랫동안 워시드 중심 규범을 유지해 왔지만, 현재는 내부 품질 분류와 가이드라인을 개편해 코-퍼먼트·인퓨즈드·기타 실험 가공을 제도권 안으로 포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SCA와의 새로운 협약을 통해, 콜롬비아 커피가 더 이상 “전통적 워시드 기준”만으로 평가되지 않도록 평가 프레임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Coffee Intelligence
투명성 기준은 엄격히
다만 SCA는 여전히 인공 향료가 포함된 커피를 실격 처리하는 기준을 유지하는 등, “향미 설계”와 “향료 첨가”의 경계를 엄격히 관리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퓨즈드’와 ‘코-퍼먼트’의 경계가 불명확한 현실 속에서, 투명한 공정 표기와 원료 공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Magazine Coffee / Coffee Intelligence
파나마의 반대, 업계의 긴장
Best of Panama의 강경 입장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파나마의 Best of Panama 대회는 2024년 “외부 물질을 이용해 커피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바꾸는 가공”을 전면 배제하는 규정을 시행했습니다. 네 개의 커피가 “자연적 DNA 표현에서 벗어나 외부 첨가물(foreign additives)을 사용해 점수를 올리려 했다”고 판단되어 실격 처리되었습니다. Daily Coffee News
BoP 2024 출품 규정은 명시적으로 이렇게 밝혔습니다. “어떤 카테고리에서도 향미료(saborizantes, 인공·천연 모두)나 커피가 아닌 제품(productos no propios del café)으로 ‘오염된’ 커피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조항은 과일·허브·향신료 등을 발효 단계에 넣는 코-퍼먼트를 원칙적으로 모두 배제 대상에 포함시킵니다. Royal Coffee
품질 철학의 충돌
이는 “커피 고유 잠재력”을 중시해 온 품질 철학과, “향미 설계 상품”으로서의 커피를 지향하는 흐름 사이의 긴장을 보여줍니다. 콜롬비아의 실험이 성공하는 동안, 파나마는 정반대 방향으로 선을 그었고, 이는 업계 내 규범과 가치 논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Magazine Coffee
생산자에게는 생존 전략
3%에서 2배 프리미엄으로
긍정적으로 보면, 코-퍼먼트와 실험 가공을 통해 일부 생산자들은 기존에 3% 프리미엄을 두고 경쟁하던 구조에서, 로트 가격을 2배 수준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생산비 상승과 기후 리스크 속에서 농가가 커피 재배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됩니다. Coffee Intelligence
소외될 수 있는 전통 농가
물론 우려도 존재합니다. 고위험·고투자 발효 실험에 참여할 수 없는 농가들이, 시장의 관심과 프리미엄이 코-퍼먼트 쪽으로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강한 발효 캐릭터를 가진 로트는 맛의 변동성·저장 안정성 이슈가 커, 수입·유통 단계에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Magazine Coffee / Coffee Intelligence
워시드 위에 쌓는 새로운 층
콜롬비아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은 명확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워시드가 여전히 수출의 중심이자 산업의 “뼈대”이며, 코-퍼먼트·실험 가공은 그 위에 얹는 고부가가치 레이어라는 것입니다. FNC와 연구기관(세니카페)은 새로운 품종(예: Celestra, Castalia, Cocoon, Castillo 2.0 등)을 개발하며, 이들이 워시드뿐 아니라 다양한 발효 가공에서도 경쟁력을 갖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Coffee Intelligence
결국 콜롬비아의 “워시드에서 코-퍼먼트로의 대전환”은 전통을 버리는 움직임이 아닙니다. 워시드 강국이라는 기반 위에서 발효 실험을 전면에 내세워 수익성과 시장 접근성을 재구성하려는 전략입니다. 논쟁은 있지만, 생산자의 생존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현실적 선택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성공할지는 규범 정립, 투명성 확보, 교육 수준 향상에 달려 있습니다. Coffee Intelligence / Magazine Coffee
브라질이 바꾼 커피 상식, 덜 익은 체리도 스페셜티가 된다
콜롬비아 커피 생산량, 30년 만에 최고 기록 달성… 하지만 앞으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