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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커피

IDH, 베트남 등 4개국 커피 산지에 ‘재생’의 씨앗을 심다

네덜란드 지속가능무역기구 IDH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지속가능 커피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새로운 4년짜리 투자 플랫폼 ‘레질리언트 커피 프로그램(RCP)’을 공개했습니다. 베트남, 인도, 콜롬비아, 우간다 네 개 원산지를 대상으로 하며, 2030년까지 약 30만 명의 농가에 닿아 연간 약 50만 톤의 재생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첫 출범지로 선정된 베트남에서는 ALDI SÜD가 선도 투자자로 나섰고, JDE Peet’s도 라운드테이블에서 이니셔티브에 힘을 실었습니다.

기후가 흔든 커피밭, 왜 지금 이 프로그램인가

커피 산업이 이런 대규모 공동 투자를 필요로 하게 된 배경에는 냉정한 숫자들이 있습니다. 2024~2025년 베트남을 덮친 가뭄은 전국 커피 생산량을 약 20% 끌어내렸고, 뒤이어 중부고원 지역에 닥친 홍수는 일부 농장이 두 번의 작기를 지나야 겨우 회복할 수 있을 만큼 큰 타격을 남겼습니다. 이미 기후 충격만으로 커피 수확량이 10~30% 줄어드는 상황에서, 2050년까지 기온 상승이 이어지면 커피 재배에 적합한 땅 자체가 20~50%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지요.idh.org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IDH는 처음부터 이 판을 짜지 않았습니다. 이미 2015년부터 전국 커피 생산의 약 95%를 차지하는 베트남 중부고원에서 비슷한 방식의 랜드스케이프 접근을 운영해 왔고, 독립 분석 결과 이런 지역 단위 공동 투자 방식이 기업이 개별적으로 움직일 때보다 8~15배 비용 효율적이라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RCP는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컴팩트(Compacts)’라 불리는 관할구역 단위 공동 투자계획으로 정부, 기업, 지역기관을 한데 엮는 방식을 택했습니다.Comunicaffe

베트남에 걸린 구체적인 숫자들

베트남 사업의 목표치는 상당히 촘촘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전체 커피 재배 농가의 약 10%에 해당하는 7만 5,000개 농가(전체 재배 면적의 약 14%)에 도달하는 것이 1차 목표이며, 이 가운데 최대 70%가 재생농업 관행을 실제로 채택하도록 유도합니다. 여기에 2026년 기준선 대비 약 15% 낮은 수준인 24만 톤의 CO₂ 배출 감축농가 소득 15% 증대라는 목표도 함께 걸었습니다. 이 숫자들은 말뿐인 선언이 아니라 공동 측정·보고·검증(MRV) 및 추적 시스템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이 이번 발표의 핵심입니다.idh.org

‘재생커피’란 대체 무엇인가

유기농과는 다른 지향점

재생커피는 유기농이나 공정무역처럼 산업 전체가 합의한 단일 인증 기준이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글로벌커피플랫폼(GCP)이 2025년 6월 발표한 가이던스는 이를 “토양, 생물다양성, 물이라는 자연 자원을 개선·복원해 농가의 수익성과 회복력을 높이고 장기적인 커피 공급을 보장하는 결과 중심의 접근”으로 정의합니다. illy, JDE Peet’s, Nestlé, ofi 등 주요 기업과 국제 기관이 함께 만든 이 가이던스는, 제각각 쓰이던 재생커피 개념을 하나로 모아보려는 산업 전반의 시도였지요.Global Coffee Platform

가장 큰 차이는 방향성에 있습니다. 유기농 인증이 합성 비료나 농약 사용을 금지하는 ‘위해 방지’형 규정이라면, 재생농업은 토양 유기물 증가와 탄소 격리처럼 적극적인 개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다만 이 구분이 아직 인증 체계로 뒷받침되지는 않는데,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의 2022년 보고서는 Fairtrade나 Rainforest Alliance 같은 기존 인증에조차 온실가스 배출과 직접 관련된 기준이 없다는 점을 명확한 공백으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SCA

IDH는 어떻게 ’50만 톤’이라는 숫자를 낼 수 있었나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나옵니다. IDH가 모호한 ‘재생커피’라는 용어를 그대로 목표치로 삼은 게 아니라, SAI Platform이 만든 ‘레제너레이팅 투게더(Regenerating Together, RT) 프레임워크’라는 구체적 표준 하나를 선택해 목표를 그 표준에 고정시켰다는 점입니다. 190개 이상 회원사를 둔 SAI Platform이 2021년부터 개발해 2025년 상반기 공개한 이 프레임워크는, 특정 관행을 강제하는 대신 맥락 분석과 결과 선택, 관행 채택, 지속적 개선계획으로 이어지는 4단계 절차로 재생농업을 정의합니다. 이 절차 자체가 표준화되어 있어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농장이라도 동일한 척도로 진행 상황을 비교하고 집계할 수 있게 됩니다.Frontiers

이렇게 정해진 절차는 제3자 검증기관이 현장 감사를 거쳐 통과 여부를 판정하고, 검증을 통과한 농장만 관련 클레임을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IDH의 RCP는 이 검증 결과를 각 기업이 따로 중복 측정하지 않도록 공유 MRV와 공동청구(co-claiming) 시스템으로 통합해, “참여 농가의 최대 70%가 RT 프레임워크 관행을 채택”이라는 목표의 근거로 삼았습니다.SAI Platform

그럼에도 남는 그린워싱 우려

하지만 이런 체계가 완성됐다고 해서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 전문 매체 The Pourover는 “재생농업이 커피워싱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규모가 큰 기업들이 명확한 정의 없이 이 용어를 마케팅에 활용해 정작 감축 책임을 하류 농가로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NewClimate Institute의 2024년 보고서 역시 “재생농업에 대한 공통된 정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마다 서술이 매우 다르다”는 연구자의 발언을 소개했지요. 같은 기사는 네슬레가 2021년 5년간 13억 달러를 재생농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같은 기간 940억 달러 매출·180억 달러 순이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비교도 함께 제시했습니다.The Pourover

Coffee Intelligence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습니다. FAIRR가 글로벌 애그리푸드 79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63%가 재생농업을 기후·생물다양성 위기의 해법으로 언급했지만, 실제 농가 지원을 위한 재정적 약속을 갖춘 곳은 네슬레·펩시코·JBS·소덱소 4곳에 불과했고, 약속이 있는 기업의 64%조차 이를 달성할 정량적 목표가 없었습니다. 이는 IDH의 RCP처럼 농가 수, 배출량, 소득 증가율 같은 정량 목표를 명시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드문 사례임을 보여줍니다.Coffee Intelligence

RT 프레임워크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위험요소를 점수화하는 맥락 분석 단계는 SAI Platform 스스로 “의도적으로 주관적”이라 밝히고 있고, 정량화 가이드와 어슈어런스 프로토콜은 2025년 1월에야 공개돼 아직 산지 전반에서 폭넓게 검증된 상태는 아닙니다. 특히 농가 소득 관련 지표는 환경 지표에 비해 데이터 수집체계가 덜 성숙한 영역으로 분류돼 있어, 소득 15% 증대라는 목표의 측정 방법론은 상대적으로 검증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AgFunderNews

결국 관전 포인트는 검증의 엄격함

정리하면 RCP는 기존 랜드스케이프 접근의 비용 효율성이라는 근거 위에서, 4개국·30만 농가·연 50만 톤이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하나의 검증 가능한 표준을 결합해 이전보다 진전된 형태의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기업마다 제각각 정의로 “재생농업 전환 X%”를 주장하던 이전 방식보다는 분명 비교 가능성을 높인 접근입니다. 다만 표준 자체의 채점 방식이 여전히 주관적이고 검증 실적이 짧다는 점에서, 이 숫자들은 ‘완전히 검증된 성과’라기보다는 업계가 지금까지 합의한 최선의 측정 방법을 적용한 목표치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합니다. 앞으로 IDH가 공개할 MRV와 공동청구 체계의 투명성이 이 프로그램의 진짜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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