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커피, ‘India Coffee 앱’으로 유럽 시장 지키기에 나서다(EUDR)
유럽연합(EU)이 시행하는 산림파괴 방지 규정, 이른바 EUDR 때문에 전 세계 커피 산지가 분주해졌습니다. 인도 커피위원회는 2026년 8월 16일 재배농가들에게 자체 개발한 ‘India Coffee’ 앱에 등록하라고 요청했는데요. 인도 커피 수출의 45%가 유럽으로, 그중 16%는 이탈리아 한 곳으로만 향하는 만큼 이 규정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등록 절차와 배경, 그리고 저위험·표준위험 분류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까지 최대한 쉬운 말로 정리해봤습니다.
EUDR이 뭐길래 이렇게 다들 분주할까
EUDR은 커피, 목재, 팜유, 코코아, 소, 콩, 고무 같은 품목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2020년 12월 31일 이후 산림을 파괴하지 않은 땅에서 재배됐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쉽게 말해 ‘이 원두가 숲을 없앤 자리에서 자란 게 아니다’라는 걸 위성 데이터나 지오로케이션 좌표로 입증하라는 것이죠. 문제는 이 증명을 실제로 준비해야 하는 쪽이 다름 아닌 농장 현장의 재배농가라는 점입니다.
인도 커피위원회가 던진 두 가지 메시지
왜 자체 앱을 만들었나
인도 커피위원회 의장 MJ 디네시는 카르나타카주 쿠샬나가르 인근 행사에서 농가들에게 정부가 만든 ‘India Coffee’ 앱 등록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인도가 현재 EUDR상 저위험 국가로 분류돼 있으며, 실제 정밀 감사를 받는 사업자 비율은 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어요. 다만 이 1%가 “수출 물량의 99%가 무검사로 통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뒤에서 다시 짚겠지만, 인도산 커피가 EU에 들어갈 때는 물량 기준 100%가 실사 진술서(DDS) 심사를 거쳐야 하고, 1%는 그중에서도 감독당국이 매년 골라 서류·추적성·현장 기록까지 뜯어보는 사후 정밀 감사 비율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자체 앱 등록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민간 제3자 서비스를 이용하면 톤당 최대 35달러의 비용이 드는데다, 국가 농업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플랫폼을 쓰면 이 두 가지 부담을 동시에 덜 수 있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입니다.New Indian Express
등록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나
등록 방식은 농지 규모에 따라 나뉩니다. 4헥타르(약 10에이커) 이상 농지는 폴리곤 형태의 지오펜싱 데이터를 제출해야 하고, 그보다 작은 소규모 농지는 GPS 좌표만 등록하면 됩니다. 인증은 토지소유 증명서(RTC)와 인도의 국민 신원증명 시스템인 아드하르(Aadhaar)를 통해 이뤄지고요. 하지만 카르나타카주 커피재배자협회장 HB 시바나는 말나드 지역의 부실한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등록과 지오태깅 작업 자체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정부의 대안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미등록 상태로 남으면 EU 국가에서 아예 구매를 거절당할 수 있어, 결국 등록을 못한 농가일수록 낮은 가격에 판매를 강요받는 악순환에 놓일 위험이 있습니다.Times of India
산업계가 짚는 더 근본적인 문제
인도 정부 관계자는 CNBC-TV18과의 인터뷰에서 EUDR과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을 사실상 보호주의적 조치로 규정하며 반발했습니다. EUDR이 정의하는 ‘산림’의 기준이 전체 수목 캐노피 면적을 제외하는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과 어긋난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어요.CNBC-TV18
더 나아가 국제커피기구(ICO)에 따르면 전 세계 커피 농가 2,500만 명 중 약 80%가 소농인데, 이들은 자금과 기술, 디지털 접근성이 제한돼 있어 EUDR이 요구하는 지오로케이션 데이터와 토지 문서를 갖추기가 애초에 쉽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법적 체계와 토지 문서 형식이 달라 준수 작업 자체가 지연되고, 데이터 품질과 필지 전체를 빠짐없이 커버하는 문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FoodNavigator
위험도는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까
수출량이 아니라 산림 지표가 핵심
EUDR상 국가별 위험도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시행규정을 통해 결정하며, 법적 근거는 규정(EU) 2023/1115의 제29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등급을 가르는 기준이 수출 물량의 크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집행위원회는 ①산림 파괴 및 황폐화 비율 ②해당 품목을 위한 농경지 확장 비율 ③해당 품목의 생산 동향, 이 세 가지 정량 지표를 핵심으로 평가합니다. 여기에 산림·환경·재산권 관련 국내법의 질과 실제 집행 수준, 파리협정이나 CITES 같은 국제 공약 준수 여부, 위성 영상 등 모니터링 체계까지 정성적으로 함께 따집니다. 평가의 국제 공인 근거로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산림자원평가 데이터가 쓰이고요. 즉 수출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상관없이, 원산지 국가 자체의 산림 파괴 위험도가 등급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입니다.European Commission Green Forum
2025년 5월, 첫 등급표가 나왔다
집행위원회는 2025년 5월 22일 시행규정(EU) 2025/1093을 통해 첫 공식 국가별 목록을 발표했습니다. 벨라루스, 미얀마, 북한, 러시아 등 4개국은 고위험으로 분류돼 사업자 감사 비율이 9%이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라질, 콜롬비아, 코트디부아르, 에티오피아, 페루를 포함한 약 50개국은 표준위험으로 분류돼 3%가 감사 대상입니다. 반면 인도를 비롯해 모든 EU 회원국, 미국, 영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등 약 140개국은 저위험으로 분류돼 감사 비율이 1%에 불과합니다.ATIBT
오해하기 쉬운 지점, ‘1%’는 무검사 통과가 아니다
이 대목에서 흔히 오해가 생깁니다. “1%만 검사받고 99%는 무검사로 통과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EUDR 하에서는 예외 없이 모든 관련 품목에 실사 진술서(DDS)가 첨부돼야 EU 시장에 반입될 수 있고, 사업자는 산림 파괴 여부·GPS 좌표·생산국·공급자 정보를 담아 EU의 전자 시스템(TRACES NT)에 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진술서 없이는 통관 자체가 불가능하고 최소 취급량 면제 조항도 없어서, 물량 기준으로 보면 100%가 서류 심사 대상입니다.EEAS
앞서 나온 1%·3%·9%는 회원국 감독당당국이 매년 실시해야 하는 정밀 감사(compliance check)의 최소 비율이며, 이는 규정 제16조 8~10항에 명시돼 있습니다. 단순 서류 접수가 아니라 사업자의 위험평가·완화절차·기록 보관 같은 실사 시스템 자체를 들여다보는 심층 검사이고, 대상 단위도 화물이 아니라 사업자·거래자입니다. 즉 인도에서 수입하는 EU 사업자가 100곳이라면 그중 최소 1곳 이상을 골라 매년 정밀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며, 이 수치는 법이 정한 최소치일 뿐 감독당국이 의심스러운 사업자를 더 많이 검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Coolset
등급이 낮고 높을 때 실제로 달라지는 것
그렇다면 저위험과 표준위험·고위험 사이에 진짜 유불리는 어디서 발생할까요. 무엇보다 사업자가 제출해야 할 실사 절차의 두께가 달라집니다. 저위험국은 위험평가나 위험완화 절차 없이 GPS 좌표 등 최소 정보만 갖춘 진술서로 충분한 ‘단순화된 실사’가 허용되는데, 이는 EUDR 제13조에 근거합니다. 반면 표준위험·고위험국은 이 간소화 옵션 자체가 막혀 있어 사업자가 훨씬 두꺼운 서류와 위험완화 근거를 준비해야 하고, 그만큼 통관 준비에 시간과 비용이 더 듭니다.WWF
특히 사후 감사 대상 비율도 함께 벌어져서, 표준위험국은 사업자의 3%, 고위험국은 9%가 매년 정밀 감사를 받아야 하는 반면 저위험국은 1%에 그칩니다. 결국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표준위험 생산국의 EU 수입업체는 인도산 원료를 다루는 업체보다 서류 준비 부담과 감사에 걸릴 확률 모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셈입니다. 인도 커피위원회가 강조한 “수출의 1%만 검사”라는 표현도 정확히는 이 감독당국 정밀감사 비율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European Commission Green Forum
형평성 논란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처럼 세계적인 주요 생산국들이 하나같이 표준위험군에 묶이면서, 상대적으로 저위험국으로 분류된 인도·EU·미국산 원료에는 서류 부담도, 사후 감사 확률도 함께 낮아진다는 점이 형평성 문제로 지적됩니다. 시행 초기에는 모든 국가가 일단 표준위험으로 시작했고, 이후 집행위원회가 산림·생산 지표를 근거로 재분류했다는 점에서, 등급 산정 자체가 순전히 환경 지표에만 근거한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특정 대형 생산국들에 불리하게 작동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Cattwyk 여기에 더해 이 벤치마킹 목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2026년 이후 주기적으로 갱신될 예정이어서, 갱신 시점마다 서류 부담과 감사 확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생산국과 수입업체 모두에게 남아 있습니다.Coolset
결국 필요한 것은 실질적 지원
인도는 저위험국이라는 지위 덕에 실사 절차와 사후 감사 확률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지만, 그렇다고 등록과 지오태깅 작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말나드 지역처럼 통신망이 취약한 곳에서는 여전히 소농들이 100% 서류 심사에 필요한 GPS 좌표 확보에 애를 먹고 있고요. 결국 EUDR이 요구하는 투명성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등급 분류만큼이나 소농의 규제 부담을 덜어줄 자금과 기술 지원 프로그램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업계 전반에서 커지고 있습니다.CNBC-TV18
ADB, 커피 소농 5,700명에 5,000만 달러 지원…기후·EUDR 이중 압박 정면 돌파
